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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박식

교황직은 왜 종신인가요? – 사임과 후계 문제에 대한 제도적·신학적 고찰

by jk_mango 2025.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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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 “교황은 평생직인가요?”라는 질문에 답합니다

천주교의 최고 지도자인 교황은 일반적으로 “종신직(終身職)”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역사상 대부분의 교황은 선종(교황의 사망)으로 그 임기를 마쳤습니다. 이로 인해 “교황은 평생 자리를 지키는 직책이다”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십 년 사이, 교황직을 스스로 내려놓는 경우가 등장하면서 이 인식에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황은 실제로 사임할 수 있는지, 혹은 임기 중 자리를 넘겨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후계자는 어떤 방식으로 정해지는지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2. 교황직은 원칙적으로 종신직입니다

2.1 교황직의 종신성 – 전통과 신학적 기반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도 베드로에게 맡긴 사명을 계승한 인물로 여겨집니다. 마태복음 16장 18~19절에서 예수는 베드로에게 “너는 반석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고, 이는 베드로의 사도직과 권위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함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교황은 자신의 죽음까지 교회를 지키는 사명자로 이해되어 왔으며, 이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교황직은 사망 시에만 종료되는 종신직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2.2 교황직은 행정직이 아니라 영적 사명

교황은 단지 교회 행정을 처리하는 관리자라기보다, 신앙의 목자이자 전 세계 가톨릭 공동체의 아버지(Papa)로 간주됩니다. 따라서 일반 직책처럼 “이제 그만두겠다”는 개념보다는 ‘소명을 다할 때까지 감당해야 할 자리’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강합니다.

 

3. 교황도 자발적으로 사임할 수 있습니다

3.1 교회법상 교황 사임은 허용됩니다

비록 전통적으로 종신직이지만, 가톨릭 교회법 제332조 제2항에 따르면 교황도 사임할 수 있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교황은 완전한 자유 의사로, 적절하게 선언함으로써 교황직을 사임할 수 있다.

다른 누구의 동의나 수락은 필요하지 않다.”

 

즉, 교황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발적으로 사임을 선언할 수 있으며, 그 누구의 승인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3.2 실제 사례 –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13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입니다. 그는 건강 문제와 고령으로 인한 체력 저하를 이유로 스스로 교황직을 사임했고, 이는 약 600년 만의 공식적 자발적 사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의 사임은 교회법에 따라 인정되었고, 이어진 콘클라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

 

4. 교황이 “자리를 넘겨준다”는 표현은 가능한가요?

4.1 교황은 특정인을 후계자로 지명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황이 자신의 후임자를 직접 지정하거나 ‘지명’하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황직은 세습이나 선임자가 직접 고르는 방식이 아니라, 전 세계 추기경들이 참여하는 ‘콘클라베’에서 투표로 선출되기 때문입니다.

 

교황이 누군가를 후계자로 “콕 집어 넘겨주는” 방식은 교회 구조상 허용되지 않으며, 만약 그렇게 할 경우 후계자 선출의 공정성과 신학적 정통성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4.2 교황이 후계자를 염두에 둘 수는 있습니다

비공식적으로는 교황이 어떤 추기경을 중용하거나 중요한 직책에 임명함으로써 차기 교황 후보로 길을 터주는 경우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을 주요 부서(복음화성) 장관으로 임명해 차기 교황 후보 중 하나로 주목받게 했습니다.

 

유럽 이외의 지역 출신 추기경을 대거 서임함으로써 교회의 다양성과 세계화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후계 지정이 아니라 영향력 있는 방향 제시일 뿐, 교황직 승계는 어디까지나 콘클라베의 집단 판단에 의해 결정됩니다.

5. 교황 사임 후는 어떻게 되나요?

5.1 사임한 교황은 어떤 신분으로 살아가나요?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사임 후 “교황 직무는 끝났지만 교황이라는 정체성은 유지한다”는 입장에서 “명예 교황(Pope Emeritus)”이라는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바티칸 내 수도원에 거주

 

외부 정치나 교회 행정에 개입하지 않음

 

공개적인 발언도 최대한 자제

 

이런 모습은 후임 교황의 권위를 보장하고, 두 명의 교황이 교회를 나누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습니다.

 

5.2 향후 교황 사임은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고령화와 건강 문제, 현대의 빠른 변화 속도 등으로 인해 앞으로도 교황 사임이 드문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과거 여러 차례 “내가 필요 없을 때는 교황직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언급하며, 교황직의 사임 가능성을 열어놓은 바 있습니다.

 

6. 교황직에 대한 현대적 인식 – 종신과 책임의 균형

6.1 ‘소명’이냐, ‘직무’냐

과거에는 교황직을 하느님이 주신 소명(Calling)으로만 이해했다면, 현대 교회는 교황직을 신앙과 리더십, 행정이 결합된 복합적인 책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건강이나 정신력의 저하가 교회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자발적으로 사임할 수 있다는 사고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6.2 존엄한 사임도 하나의 ‘신앙적 선택’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사임은 단지 육체의 한계를 인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교회의 선익을 위한 신앙적 결단이었습니다. 그 선택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책임 있는 지도자의 성숙한 결정”으로 평가받았고, 이후 교황직의 사임 가능성을 합법적이고 도덕적인 방식으로 정착시켰습니다.

 

7. 결론 – 교황은 종신직이지만, 시대와 교회의 필요에 따라 변화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교황직은 원칙적으로 종신직이지만,

 

자발적인 사임은 가능하며,

 

후계자는 지정할 수 없고 콘클라베를 통해 선출되며,

 

사임 후에도 명예 교황으로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 원칙입니다.

 

교황은 더 이상 단지 ‘자리’를 지키는 인물이 아니라, 시대와 공동체의 필요를 읽고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영적 리더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황은 자리를 넘겨줄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개인적으로 후계자를 지명해 넘길 수는 없지만, 사임은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후계자는 교회의 전통 절차에 따라 선출됩니다.”

 

그것이 바로 천주교가 유지해온 전통과, 현대의 책임 있는 변화가 공존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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